2010년 1월 24일 일요일

동경이야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동경이야기' 를 보았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보고 난 뒤에 조금은 지루하고 담담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오즈의 영화를 한다는 것을 보고 극장에서 오즈의 영화를 보고 싶어 보고 왔다.

 

'동경이야기' 는 이명세감독이 추천을 하여 상영하게 되었고,

영화가 끝난 뒤 '씨네토크'라는 이름으로 이명세감독이 느낌과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명세감독이 한 말들 중,

영원을 통하여 일상성을 이야기 한다는 것.

배우들의 연기 리듬, 완벽성, 노력의 의해 완성되어진 듯한 느낌의 연기

정확한 내러티브

라는 말들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오즈의 영화를 볼 때면 큰 굴곡없이 진행되는 이야기나,

조금은 답답한 듯한 화면들이

조금 크게 얘기하자면 보통의 삶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반복되는 생활과 담담한 하루들로 이루어져 있는 삶.

이명세감독이 오즈는 약간 시니컬한 사람이였을 거라는 얘기에서

고개가 끄덕거렸다.

 

영화 후반부에서 교코와 노리코의 대화가 영화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한다면,

나는 그 후 노리코와 시아버지의 대화가 인상깊었다.

노리코는 남편이 죽은 뒤에도 혼자 살면서,

시부모님이 동경에 왔을 때나,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친자식보다 더 대하는데,

시아버지는 고맙다고 하고, 노리코는 아니라고 속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겸손을 보인다.

그러면서 자신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는 말이 내 속에 남았다.

판단하기 어렵다는 생각과 노리코처럼 한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서울아트시네마에는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를 보러가는 것도 많이 뜸해졌지만, 서울아트시네마에는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문득, 내가 무슨 특별한 생각에 이 곳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곳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 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없이,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서가 아니라 되도록 이곳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난 그리 논리적이지 못하고 즉흥적인 것 같다. 그것도 소심함 즉흥.

 

집에 오는 길에,

가만히 있는 것과 인내하고 있는 모습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

어떻게 알 수 있을 까는 주위를 흐르는 모습들에 대한 반응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반응해야 할 때 반응하는 것.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다수 문명에 대한 사유 외_로버트 콕스_홍기빈 옮김_책세상

 

다수 문명에 대한 사유 외_로버트콕스_홍기빈 옮김_책세상

200912월말부터 20090120 까지

 

 

제1장

비판적 정치경제학

 

현존 하는 지배적 구조에 맞서는 대안적 구조는

그 현존 구조의 내부로부터 자라난다.

20쪽

메모_

취약한 것을 기반으로 생겨 나는 것이겠지.

 

칼폴라니, 페르낭 브로델, 안토니오 그람시

현실 분석뿐 아니라 변혁 전략에도 관심을 두었다는 점은 지적해 둘 만하다.

20쪽

 

이 다소 추상적인 서론을 요약해보겠다.

① 이론은 시대에 제약당하며, 딸라서 역사적 경험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문제 해결 이론은 현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돕는다.

반면 비판이론은 그 질서를 변혁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② 정치경제학은 비판 이론의 한 형태다.

정치경제학이 분석하는 대상은 역사적 구조로서,

역사적 구조란 다른 시대 다른 인간 집단들이 현실을 규정짓는 방식,

달리 말하자면 사람들이 스스로의 욕구 만족을 위해 자연과 교호하는 틀을 의미한다.

③ 인간들이 자신들의 존재 조건에 집단적으로 대응하면서 현실이 만들어진다.

상호 주관적으로 공유된 경험은, 지속성을 가진 사회 제도들과 관행들의 형태로 그 현실을 재 생산한다.

④ 변동은 변증법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대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구조들은 모두 모순과 갈들의 요소를 발생시키며,

그 모순과 갈들이 그 구조 스스로의 변형을 야기한다.

21쪽

메모_

역사가 중요하다 라는 생각

시간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현실

역사의 이해 없이 설명한다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헤게모니 이후의 다원적 질서로의 변화를 특징짓는 것은 동질화가 아니라

다른 문화를 선별적으로 스스로에 맞게 변용시키는 것이다.

35쪽

 

근대 서구의 정치 문화는 정치적, 경제적, 철학적 방법론에 있어서

개체주의individualism 에 뿌리 박고 있다.

'지구화'란 그 궁긍적인 표출이다.

그 뿌리는 아마도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우리가 저녁밥을 얻게 되는 것은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 등이

선의를 베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라는 생각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신비로운 조화에 의해

사적 이익의 추구가 의도하지도 않았던 '공공 선public good을 낳게 된다고

가정하는 18세기 유럽 사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8세기에 들어 신의 섭리Divine Providence라는 이전의 기독교 교리가

이렇게 세속적 용어로 새롭게 단장되는 것을 나타내는 또 다른 예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이성의 간계'다

36쪽

찾아봄_

이성의 간계_헤겔 철학에서, 반이성적인 정열이 세계사를 진행하는 힘이 되지만

                  사실은 세계이성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를 이용하고 있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르는말

                  _네이버 국어사전

 

 

제2장

새천년에 즈음하여 시민 사회를 생각한다

-대안적 세계 질서의 전망

 

-최상층에 자리 잡은 이들은, 기업을 경영하는 과정 자체에 통합되어 있는 고도의 숙련 인자들로 구성된

핵심 노동력이다. 누가 무엇을 어디에서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이 맡은 임

무는 연구 및 개발(R&D), 생산장비의 유지, 기업 경영 관리, 또 지구화 이데올로기 전파 등이다.

 

-이렇게 기업 경영에 통합되어 있는 소수의 핵심을 둘러싸고 포진한 압도적 다수의 인자들이 두 번째 층을

차지한다. 이들의 숫자는 생산물에 대한 수요의 수준에 따라 변동하게된다. 이들이 갖고 있는 기술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이들은 쉽게 해고당하기도 하고 또 대체되기도 쉽다. 즉 존재 근거가

불안정한 노동자들이다. 최저의 노동 비용과 더불어 노동 이용의 최고 탄력성 -이를테면 노동권의 보호나

환경 관련 규제가 미미할 것- 을 찾아 헤매는 자본이 마침내 머무르는 곳이 이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들은 민족, 종교, 성별, 지리 등의 요소로 분열되어 있기에 집단으로 조직되어 사용자 측을 상대로

단결된 대응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생산이 초국적화됨에 따라 사회적 분열과 환경의 악화가

더욱 심화되고 만것이다.

 

-세 번째 층위에 있는 노동력은 이러한 국제화된 생산에서 배제당한 자들이다. 부유한 나라의 실업자들과

다수의 낮은 기술의 소규모 사업자들 그리고 가난한 나라의 주변화된 인구의 다수가 여기에 들어간다.

 

이 세 가지 층위(통합된 노동력, 불안정한 노동력, 배제된 노동력)로 상하가 매겨진 구조는 나라에 따라

구성 비율이 다양하지만, 이 세 가지 범주의 노동자들 모두 국경을 넘어서 펼쳐져 있는데다가 그 비율을

정부가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지구적 금융에 대한 의존 정도에 따라 엄격하게 제한된다. 불안정한 노동력

고용 그리고 노동력 배제라는 현상은 1970년대의 자본주의 위기에 따라온 사회 복지 지출의 감소로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경직된 경제학적 이데올로기는 현재 국가의 재정 적자에 화살을 돌리고

국가는 사회 복지 지출을 더욱 감소시켜야 한다고 재촉하고 있다.

54~55쪽

 

이에 조응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 질서 전체의 변혁보다는 그저 현존하는 조건에서의

생존을 도모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혁명적 사회 변혁에 대한 신념보다는 권력자 밑에

붙어서라도 편하게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들의 수가 많다. 그 권력자가 국가와 경제적 권력의 힘으로

든든히 뒷받침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노동조합이건 또 이른바 신 사회 운동이라고

불리는 것이건, 그 자발적 운동조직들 내부에서조차 부자들과 가난한 이들, 권력 있는 자들과 권력 없는

자들이라는 기본적인 갈등은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이다.

58쪽

 

그람시의 생각으로는, 의식이란 계급에서 곧바로 파생되는 것이 아니었다. 의식이란 역사적으로 구성돼

온 것이지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조건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정치의식에는 다양한 발전수준이 있다.

가장 낮은 형태는 그람시가 '조합적corporative' 단계라고 부른 것으로, 특정한 물적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집단적인 자기 이해관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조합적의식은 현존 사회 구조의 본질적 측면에는

결코 도전하지 못한다. 그저 특정 집단의 이해에만 관실을 둘 뿐이다.

그 바로 위 단계가 계급 의식으로, 이것은 국가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국가란 누구를 위해서 존재

하는가? 계급 의식은 여러 다른 형태의 조합적 의식을 통합할 수 있다. 즉 상이한 노동자 집단들

(혹은 부르주아 집단들)이 자기들 내부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그들로 하여금 특정한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지도적 기본 계급에 기반을 두는 사회를 내걸어 정치 권력을 탈취하자는 공통의 목표로

뭉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66쪽

 

그람시가 보기에 의식을 일깨우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행위자는 유기적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사회 집단의 정치적 견해를 명확하게 하도록 도와주며, 집단 성원들이 사회에서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도록 해주고 다른 집단들과 연대하여 더 높은 형태의 사회를 앞당길 수 있도록 투쟁할 방법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68쪽

 

억압적 체제가 계속 유지되는 조건은 '민중들 사이의 사회적 통합이 무너져 그들 다수가 수동적이 되는 상태' 라고 그람시는 말한다(<옥중서고>, 183쪽),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지구화에 휩쓸려 들어간 민중들에게 전형적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90쪽

 

 

해제-진보적 국제정치학을 위하여

(1)비판 이론으로서의 카의 현실주의

 

이론은 항상 '누군가를 위해서' 또 '어떤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법이다. 국제정치에서 그러한 실증주의적 과학주의나 도덕적 이상주의를 앞세우고 '진리' 혹은 '당위'를 표방하면서 어는 한쪽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이론은 사실상 자기 쪽의 정치적 이익이라는 당파서을 숨기고 있는 고도의 프로파간다일 뿐이라고 카는 보았다.

카에게 있어서 이렇게 현실주의 정치 잉론은 원래 기존 지배 질서의 구조와 그 담론을 해체하고 분석하는 '비판이론'으로서 출발했던 것이다. 그는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당시 1930년댜의 유럽 정치경제 질서의 현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파악하려 애쓴다. 또 그는 이러한 현실파악에 근거하여 지배 세력의 담론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그 담론 자체가 현실의 정치적 투쟁의 중요한 일부분임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자신 또한 그러한 현실을 개선해나가는데 능동적으로 개입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점에서 그의 이론은 반성성reflexibility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164~165쪽

 

 

040811_12_팔당댐

040811_12
팔당댐

 

한강남단자전거도로

▲한강남단 자전거도로
노량진에서부터 광나루 자전거도로가 끝나는 곳까지 자전거로 약 2시간반소요.
아스팔트로 잘 되어있어 자전거타기에는 좋은 조건이다.

 

 

달맞이봉

▲달맞이봉
언제쯤인지 한겨레의 봄을 알리는 사진으로

달맞이봉의 개나리 핀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참 정감가는 곳이다.
도시안의 녹지공간.

 

▲올림픽대교와 테크노마트
훈련소에 있을 때 올림픽대교 탑위 성화조형물을 올리던 헬리콥터가 떨어졌다.

국방일보에도 크게 기사가 났다.
얼마전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군사물에 관한 것이 나오는 도중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장면을 보았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별 다른 감흥이 전달되어오지 않는다. 문제다.

 

아차산

▲아차산
내 마음을 이끄는 곳 중 하나다.

아직 한 번도 아차산에는 가보지 않았다. 아차산성, 백제의 최전방 기지
왠지 백제는 나의 마음을 이끈다. 그래서 건너편 풍납토성도 좋다.

 

▲암사동 선사유적지
팔당으로 가는길 한 번 들러보았다.

시골로 가기위해 중부고속도로로 가다보면 언제나 큰 표지판으로 소개하는 곳이라

이쪽으로 오면 언제 한번 들르리라 했다.

유적지 안으로는 움집촌과 체험움집, 선사시대에 관한 소개관이 있다. 가 볼 만하다.

 

▲암사동 선사유적지내에 체험움집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았다.

화덕이며 음식물 보관소, 창을 손질하는 아버지, 고기를 썰고 있는 어머니등...

 

▲팔당대교에서 바라본 팔당댐

 

 

▲줌인

 

 

▲팔당역 원경
하늘색 큰 건물이 있는 곳이 팔당역이다. 하루 세 번만 열차는 서는 곳.
철도가 개편되기전에는 통일호만이 이 역을 들렸는데 무궁화호가 이 역에 정차하니 왠지 어색하다.
간이역에 맞는 그런 열차가 정차하였으면 좋을텐데, 나의 고지식함일 수도.....
그래도 저런 간이역이 작고 다소곳이 보여 좋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량들
이때가 4시반에서 5시사이었던 것 같은데 어딜 다녀오시는지 벌써부터 교통체증이다.
양평으로 가는 6번국도 언제나 저녁시간대면 서울로 들어가기위해 고생을 해야한다.

 

 

▲팔당대교 원경

 

 

 

 

 

▲구 6번국도와 중앙선
이제는 확장되어진 6번국도가 생겨 예전 팔당댐옆으로

지나가는 구 도로의 차량은 거의 잘 볼 수가 없다.
간혹 이곳을 지나가는 시내버스와 차량이 막혀 돌아가는 차만이...
구 6번국도는 이곳을 지나가는 중앙선과 형제와 같이 양평까지 평행선을 달리듯 달린다.

 

 

▲팔당댐

 

 

▲팔당수력발전소

 

 

▲팔당댐
내가 왜 이곳을 찾아왔는지. 자전거여행이라는 첫 걸음을 왜 이곳으로 왔는지.
왠지 모를 허탈감이 오는 것 같았다.

 

 

▲자전거
내가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 넘. 광오형에게 감사하다.^^
이제 겨울 접어 들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줄겠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또 다른 자전거여행을 꿈꾼다.

 

 

▲팔당댐

 

 

▲팔당댐을 바라보고 있던 새
이 새도 나와 같이 팔당댐을 보기 위해 이 곳에 왔을까?

 

 

▲팔당댐
팔당댐 북쪽에서는 수문은 안보이지만 계속해서 물이 빠져 나오고 있다.

아마 발전을 하고 나온 물인 것 같은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팔당댐
언제나 거대한 건축물들을 보면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생긴다.

 

▲팔당댐
정확히 무엇을 하는 시설물인지 모르겠다. 곧게 솟아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팔당호

 

 

▲팔당댐 머릿돌

 

 

▲수문
물 끝과 수문이 끝이 거의 맞다아 있는 듯하다.

물의 엄청난 압력을 참아내며 버티는 수문도 대단하다.

 

 

▲팔당댐위로 다니는 차들.
왕복2차로로 왠만한 왕복2차로보다는 1미터 정도 작은 것 같다.

 

 

▲팔당호
정약용유적지를 보기 위해 팔당댐을 지나 열심히 달려 보았지만 개관시간이 지나 구경을 못하였다.
유적지에서 강쪽으로 조금만 나오면 팔당호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어,

잠시 이 곳을 들리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찾아갔다.

 

사진을 정리 한 후

팔당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나기 전 창원으로 내려가신 광오형께서 자전거를 주셨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가보려 했는데,

운동부족과 첫 여행으로 그리 멀리 가지는 못 할 것 같아
가깝지만 그리 쉽게 가지는 못하는 팔당댐과 양수리를 가보기로 하였다.

자전거로 편히 하루, 이틀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곳.
양수리는 그 전 양평에서 일을 하면서 지나가던 곳이라

그리 많이 낯설지 않고 편히 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떠나는 날, 전날 먹은 술로 늦잠을 자고 점심이 지난 뒤에야 출발을 하였다.

자전거를 타면서 이리저리 장비를 점검하고 챙기던 중

그만 보라매공원에서 지나시던 아주머니를 치었다.

순간 정말 큰일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는 순간적이었다.

아주머니께 연락처를 드리고, 남은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첫 자전거여행의 설레임은 깊이 잠들어 버리고, 불안한 마음많이 내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무더운 날씨를 날리며 사동 선사유적지와 팔당댐을 보았고,

그리 흥이 나지 않은 엷은 파도 만이 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결국 양수리는 구경하지 않고 바로 하남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고

새벽녘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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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8일 월요일

040729_삼척_동해

040729
삼척_동해

 

 

▲삼척터미널로 가는 도중 본 건물
 
여인숙이라고 합니다. 왠지 이런 예전 건물의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장 옆길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시장통으로, 아직 아침 이른 시각인지 한산하다.

 

▲정기장날 주차금지 표지판
  이른시간, 오늘은 장날이 아니니, 아쉽다.

 

 

▲삼척고속터미널
  뒤편에 넝쿨로 감싸안아진 건물이 눈에 이끌립니다. 우리집도 저렇게....

 

▲동해로 가는 승차권
  강원도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면 오랜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도 기차를 타고 올라가고 싶어서 기차를 타러간다.
  삼척에는 역은 있지만 여객열차는 다니지 않는다고 경찰아저씨가 가르쳐 주셨다.

 

버스를 타면 언제나 맨뒤 바로 앞 좌석에 앉는다.
맨뒤는 턱이 올라와 있어 불안하여 그 바로 앞좌석으로 앉는데 이날도 역시 그 자리에 앉았다.
출발시간을 기다리며 공회전하는 엔진의 떨림이 내 몸으로 느껴진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초행길을 하는 나도 떨림이 있다.
엔진의 흔들림, 초행길에서의 기대감과 긴장감의 떨림이 동일시 되어 느껴진다.

 

 

▲동해종합버스터미널
  삼척에서 동해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10분정도만에 도착한 것 같다.

 

 

▲버스정거장의 관광안내도
  동해역에 사로 잡혀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동해역 근처에는 특별히 볼 것이 없다는 것을..

 

 

▲동해시청
  동해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대략 4킬로정도 되니 1시간정도을 걸은 것 같다.  
  아침 8시정도인 것 같은데 그늘이 아닌 곳으로 걸으면 땀이난다.

 

 

▲길가에 모여있던 비(碑)
  동해시홈페이지를 뒤져보니 유교문화유적중하나로
  관찰사이유신영세불망비, 부사이최중선정비, 부사홍명한거사비 인 것 같다.
  한자를 잘 모르는 이런문제가 생기는 것같다.

  사진이라도 있으면 비교해 가면서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단지 비에서 부사라는 한자와 성만으로 살펴보니 맞는 것 같다.

  다들 이전하였으니 저렇게 모여있는 것이고..

 

▲여러비중 하나.
  비의 윗단에 마음이 이끌린다. 조각으로 되어진 윗단이 멋들어진다.

 

▲또다른 비의 윗단
  연꽃을 새긴 것 같다. 마음에 든다.

 

▲이러한 곳을 무엇이라 불러더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성황당(?)

 

 

▲약수터(?)
  바위 밑에서 물이 계속해서 나온다. 마셔보고 싶었지만 왠지 꺼림직하다.

 

 

▲흐르는 물, 흘러서 동해로 가겠지.

 

 

▲바다다
  처음으로 제대로된 바다를 보았다.
  내려가보려 했지만, 군인들이 있어서 내려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바다를 바라보면 바닷냄새를 맡고 있는 것으로도 좋았다. 기찻길 옆 바다모습 좋다.

 

 

▲바다

 

▲바다위에 배

 

▲강릉으로 가는 기찻길

 

 

▲선로통행금지
  누가 지킬까? 미안하다. 바다에 꼬임에 넘어가 결국 선로를 넘어가고 말았다.

 

▲기상대
  어부아저씨들에게는 필수겠지요.

 

▲동해역
  동해역에 오면 관광정보를 보고 돌아다니기로 마음 먹었으나 역근처에는 볼 것이 없다는 정보만이.
  내 생각으로는 동해보다 묵호가 더 볼 것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걸어오는 동안 너무 더워서 역안에서 쉬기로 하였다.
  아침부터 이렇게 덥다니, 낮에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행위와 비슷할 것 같다.

 

 

▲매미
  기차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근처에 금강산유람선선착장에 가보기로 하고 나왔다.
  길거리에서는 매미들이 맴맴거린다.

 

▲동해항에 있는 시멘트공장
  거대한 건물을 보면 멀리서는 대단함을 가까이에서는 두려움을 느낀다.

 

 

▲시멘트공장

 

 

▲항에 정박중인 배

 

 

▲금강산유람선선착장

 

 

▲금강산유람선선착장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지만, 정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유람선도 안보이고, 육로관광이 시작되었으니 많이 이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면 안하는지도....

 

 

▲동해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2층 집
  의용소방대라는 현판이 붙어있었다. 일본식이라는 냄새가 난다. 그래도 정감은 간다.

 

 

▲묵호항여객선터미널
  동해역에서 더 이상은 볼 것이 없을 것 같아 택시를 타고 묵호로 왔다.
  시간이 많이 있지 않아서 묵호항여객선터미널만 보았다. 언젠가 울릉도를 가기위해 다시 오리...

 

 

▲고가다리 밑 기찻길
  고가다리는 묵호항여객선터미널로 들어가는 길이다.

 

 

▲무너져 버린 집
  흙으로 쌓아올린 집을 짓고 싶다. 물론 무너지면 안되겠지만.

 

 

▲거울

 

 

▲벽

 

 

▲집

 

 

▲묵호역
  대략 6시간을 타고 서울로 돌아온 것 같다.
  잠을 자느라 다른 모습들은 보지 못하였지만  뒤로 올라가는 열차, 가장 높은 역인 추전역을 보았다.
  다시 한번 타 볼 기회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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