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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_서머싯 몸_민음사
20090313~20090413
무엇엔가 감동을 받으면 늘 그러하듯 필립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가슴이 벌떡거렸다.
로우즈가 가버리자 갑자기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식으로 응수했을까. 로우즈와 친하게 지내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할 판이 아니었던가.
그와 싸웠던 것은 잘못한 일이었다. 로우즈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깨닫고 필립은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 순간 필립은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주인이 되지 못했다.
악마에게 휘어잡힌 듯, 본심에 없는 가시 돋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속으로는 로우즈와 악수를 하고 싶고, 이 어정쩡한 관계를 어서 빨리 청산하고 싶지 않았던가.
괴롭혀주고 싶은 마움이 너무 강렬했던 탓이었다. 자기가 참아야 했던 고통과 굴욕을 복수하고 싶었다.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어리석음이기도 했다.
자기야 쓰라린 고통을 당하겠지만 로우즈는 아랑곳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로우즈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얘, 못되게 굴어 미안하다. 어쩔 수 없었다. 화해하자>
128~129쪽
긴긴 겨울밤이 되면, 벌거벗은 나무 사이로 바람만이 을씨년스런 휘파람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단조롭기 그지없는 황량한 밭들뿐이다.
생활은 가난 했다 일거리가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성격 속에 숨어 있는 온갖 변덕이 멋대로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것을 억제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점점 편협하고 괴팍해졌다.
135~136쪽
화가의 수업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의 문제에 대한 필립의 불안의 밑바닥에 깔린 것은
바로 성공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는 이 욕망이었다.
407쪽
「자네는 장사아치야. 인생을 콘솔 공채 에 투자해 놓고 안전하게 삼부 이자를 받고 싶지.
나는 낭비가라 밑천까지 다 써버린다네. 난 내 심장 박동이 멈출 때 마지막 한푼을 써버릴 거야.」
409쪽
콘솔공채_국채의 한 가지로 상환 기한이 없이 국가가 해마다 이자만을 지불하게 되어 있는 공채.
「세상에 가장 굴욕스러운 일은 말이지, 먹고 사는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야.
난 돈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멸감밖에 들지 않네. 그런 자들은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야.
돈이란 제 육감과 같아. 그게 없이는 다른 오감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지.
적정한 수입이 없으면 인생의 가능성 가운데 절반은 막혀버리네.
딱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한푼 벌면 한푼 이상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예술가에겐 가난이 제일 좋은 채찍이 된다는 말들을 하잖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가난의 쓰라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그래.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천하게 만드는지 몰라. 사람을 끝없이 비굴하게 만드네.
사람의 날개를 꺾어버리고, 암처럼 사람의 영혼을 좀먹어 들어가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 방해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고,
너그럽고 솔직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정도는 있어야지.
나는 말이야,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예술하는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을
자기 예술에만 의존한다면 그런 사람을 정말 가련하게 보네.」
414~415쪽
중요한 것은 요컨대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며,
그러고 나면 철학 체계는 저절로 형성되어 나왔던 것이다.
필립에게는 알아내야 할 것이 세 가지라고 여겨졌다.
사람과 그가 몸담고 사는 세계와의 관계,
사람과 그가 함께 어울려 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람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그것이었다.
431쪽
회의 사상은 안도의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이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만사는 목적에 순응할 뿐이었다.
432쪽
사회는 개인과의 경쟁에서 세 가지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법, 여론, 양심이다.
433쪽
「처음 파리에 갔을 때 들었던 얘기가 생각나요. 아마 클러튼이었을 텐데,
아름다움이란 화가와 시인이 사물에 부여한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더군요.
화가와 시인이 아름다움을 창조한답니다.
그 자체로서는 지오토의 종루(鐘樓)나 공장의 굴뚝 가운데 어느것이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런데 아름다운 사물은 다음 세대들에 불러일으키는 정서 때문에 점점 풍요로워집니다.
옛것이 현대적인 것보다 더 아름다운 건 그 때문이지요.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는 그것이 씌어졌을 때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백 년 동안 많은 연인들이 그 시를 읽어왔고
상심한 사람들이 그 시행에서 위로를 느꼈기 때문이지요.」
5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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