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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서의 예술_존듀이_책세상
이재언 옮김
경험은,
유기체와 환경 간의 상호 작용이 완전하게 수행될 때 상호 작용을 참여와 소통으로 변형시키는,
유기체와 환경간의 상호 작용에 대한 결과이자 표식이며 선물이다.
운동 기관과 결부된 감각 기관들은 이러한 참여의 수단이다.
따라서 그 모든 것들의 손상은 그것이 실천적이든 이론적이든
협소하고 둔한 생활-경험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마음과 몸, 영혼과 물질, 정신과 육체라는 모든 대립은
근본적으로 생명이 야기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공포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것들은 위축과 후퇴의 징표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여러 신체 기관, 욕구, 기본적 충동에 의거해
인간이 동물적 상태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인간을 짐승 수준으로 환원시켜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류의 경탄할 만한 탁원한 경험의 상부 구조를 세우는 기초로서의
인간 경험의 평면도를 그릴 수 있게 해준다.
사람은 특이한 면이 있어서, 야수의 수준 아래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 특이함 때문에 또한 사람은 동물의 특징인 감각과 충동의 합일,
그리고 두뇌와 이목의 합일에 있어서 참신하고도 유례가 없는 높이에 이르게 된다.
인간은 분화의 복잡성이나 세밀함에서 탁월하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인간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에서
포괄적이고 정확한 관계들이 더욱 많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구별과 그 구별로 인해 가능해진 관계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른 동물들에 비교해 인간에게는 저항과 긴장의 기회가 더욱 많고,
실험과 발명이 더욱 요구 되고, 따라서 그 활동은 아주 참신해지고
성찰은 광범위하게 심화되고 감정은 한층 치열해진다.
유기체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환경과의 투쟁과 완성의 율동은 다양하고 장기적이게 되고,
따라서 그 율동은 무한히 다양한 작은 율동을 그 가운데 포함하게 된다.
삶의 밑그림이 확장되고 풍요로워진다. 일의 성취는 더욱 키지고 더욱 미묘한 음영을 드리우게 된다.
48쪽
예술에서 미적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해주는 것은
창작하고 감상하는 경험에서의 삶의 충실성 정도이다.
54쪽
현재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많은 혹은 대부분의 물품과 집기들이
순수하게 미적이지 않다는 것은 불행하게도 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한 것은 '아름다운 것'과 그러한 '유용한 것'이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제작 행위가 경험 -모든 생명이 살아 있게 해주고 향유에 의해 활력을 소유하게 해주는 그런 경험- 이
되는 것을 저지하는 조건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생산품은 미적인 무언가를 결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작품은 특수하고 제한적인 목적에 아무리 유용하다 할지라도 궁극의 단계,
즉 직접적이고 자유롭게 생명을 확충하고 풍부하게 하는 단계에서는 유용하지 않을 것이다.
미와 유용성 간의 단절과 첨예한 대립의 이야기는 산업 발전의 역사이다.
산업발전을 통해 그토록 많은 생산이 퇴보한 생활의 한 형식이 되었으며,
그토록 많은 소비가 타인들의 노동 성과의 과도한 향략이 되었다.
55쪽
메모_현실공간에서의 제품의 의미, 상황
예술과 평범한 삶의 과정이 결합하는 것에 대한 반감은
일상적으로 영위되는 생활에 대한 감상적인 해석이요,
때에 따라서는 비통한 해석이기도 하다.
55쪽
궁극적으로 두 가지 철학이 있을 따름이다.
그중 하나는 그 모든 불확실성, 신비, 회의, 어중간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삶과 경험을 받아들이며,
그 자체의 성질들을 심화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상상력과 예술에 대하여-
그 경험을 자신에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67쪽
그가 환경 적응의 과정에서 등장하는 개념, 지식, 사고, 이론, 학문, 예술 등을
유기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수단 혹은 도구로 보았기 때문이다.
110쪽
메모_단어의 순서의 배치가 지식습득의 순서처럼 보였다. 참고할 만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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