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게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있다면, 그것은 상투성이다. 지은이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려 상투성이란 "어떤 마력도 어떤 열광도 없이 반복되는 단어"를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지적한다. 상투성이라는 적을 제압한 자만이 시인의 왕국으로 들어설 수 있다. 그 입장권을 얻으려고 분투하는 자는 이 세상을 낯설게 보아야 한다.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발견해야 한다. 세계와 불화해야 한다. 이문재 시인이 스무 살 시절에 "우리에게는 파격이 필요했다." 고 털어놓은 것은 일상이 전쟁터였음을 증언하는 말이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불렀고, 본관 앞에서 막걸리에 도시락을 말아 먹었다. 글씨를 왼손으로 썼고, 담뱃갑을 거꾸로 뜯었다."
상투성과 싸우는 자는 관념어와 싸우는 자이기도 하다. 시의 나라에서 관념어는 죽은 말이다. 말의 주검에서는 삶이 나올 수 없다. 시는 몸을, 육질을 더듬고 탐하는 일이지, 추상세계를 고공비행하는 일이 아니다. 죽은 언어는 죽은 인식을 낳고, 진부한 말은 진부한 생각을 만든다. '애수'(유치환)도 '애증'(박인환)도 '견고한 고독'(김현승)도 시의 세계에선 사어다. "시간의 무덤에서 하얗게 풍화된 죽은 말들이다." 그러므로 지은이는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개념으로 말하는 순간 지겨워진다. 당신의 습작노트를 수색해 관념어를 색출하라. 그것을 발견하는 즉시 체포하여 처단하라. 암세포와 같은 관념어를 죽이지 않으면 시가 병들어 죽는다."
관념어만 시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시는 감정의 과잉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 지은이는 말한다. "감정을 쏟아붓지 말고 감정을 묘사하라." 감정의 홍수가 넘실대는 곳이야말로 시의 금지구역이다. 넘쳐 흐르는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시가 아니다. 차라리 시는 감정의 홍수에 떠밀려 익사 직전에 이른 자의 그 위태로움을 냉정하게 묘사하는 일이다. 지은이는 가차 없이 말한다. "제발 시를 쓸 때만 그리운 척하지 마라. 혼자서 외로운 척하지 마라. 당신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하지 마라. 이 세상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척하지마라. 유식한 척하지 마라." 이'척'이야말로 시의 독이다.
과잉 감정은 가짜 감정이다. 시쓰기는 가짜를, 껍데기를 뚫고 진짜 속으로, 진실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시는 가슴으로도 쓰고 손 끝으로도 쓴다. 그러나 시는 가슴으로만 쓰는 것도 아니고 손 끝으로만 쓰는 것도 아니다. 지은이는 여기서 김수영의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를 불러들인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온몸으로 온몸을 밀어 마침내 만나는 것이 '사랑' 이라고 김수영은 말한다. 지은이는 이 온몸의 시학, 온몸의 사랑을 두고 "시를 창작하는 일은 옴몸으로 하는 반성의 과정이며, 현재형의 사랑이며 고투" 라고 다시 새긴다. 이 온몸의 사랑에서 시가 태어난다. 그렇다면 시의 세계는 삶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시는 삶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아, 당신도 시를 쓰라"
고명섭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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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또 쓰라...시는 온몸이요 목숨이니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안도현의 시작법>
책소개 기사
한겨례_0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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