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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_알베르 카뮈_김화영 옮김_책세상
2010년 02월 03일부터 읽기시작
프레시안기사, 네이버기사, 다른 읽을거리들을 보다보니 책읽는 흐름이 조금은 벌어졌다.
또다른 이유는 도시락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책을 좀 소홀히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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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04일 다 읽음.
한달을 넘게 읽었다. 이 기간 동안 설연휴도 있었고, 술도 많이 마신 것 같다.
읽는 것이 좀 힘들었는데, 본문보다 해설이 좋았다.
해설을 읽음으로 뫼르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뫼르소의 단순함, 정직함, 무의미함 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생활에서 느끼는 느낌들이 그러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의미함, 무상함, 감정이 들지 않는 것들, 그런 것에 대해서 말로 표현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
표현하는 순간 의미를 가져서 다르게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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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_ <<이방원>> 해설_장 폴 사르트르
모든 경험은 무엇이든 다 같은 값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얻는 것이 좋다. "끊임없이 의식의 날을 세워가지고 있는 한 영혼 앞에 놓이는 현재, 그리고 줄지어서 지나가는 수많은 현재들, 그것이 바로 부조리 인간의 이상이다."(시지프신화95쪽) 이러한 '양(量)의 윤리' 앞에서 모든 가치들은 무너진다. 이 세상에 던져진, 반항적이며 책임 없는 부조리 인간은 '정당화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무죄(無罪)이다. 선과 악, 허락과 금지를 가르쳐주는 목사가 도착하기 전, 서머싯 몸의 원주민들처럼, 그는 순진하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어 있는 것이다. '미소와 무관심이 깃든 영원한 현재 속에 살고 있는' 뮈슈킨 공자처럼 순진하다. 어느 면으로 보나 철저하게 순진한 그는 구태여 말하자면 일종의 '책치' 다. 이제 우리는 카뮈 소설의 제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그리려는 이방인은 바로 사회의 이른바 놀이의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 이변을 일으키는 저 기가 막힌 순진한 자들 중의 하나이다. 그는 이방인들 가운데 살지만 그들에 대해서도 그는 이방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를 사랑할 것이다. 그가 '이상한 사람이어서' 애착을 느끼는 정부 마리처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르르 미워할 것이다. 문득 그에게 증오의 시선을 던지는 것이 느껴지는 법정 속의 군중처럼. 책을 열면서 아직도 부조리의 감정과 친숙해지지 않은 우리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규범에 따라서 그를 판단해보려고 애쓰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는 우리들에게도 역시 하나의 이방인이다.
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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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와 <<이방인>>_피에르-루이 레
'진실의 순교자'
저마다 말로 대가를 치르려 하고, 감정을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 드는 세계에 대하여 그는 이방인이다. 뫼르소는 이중인격자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자신의 실제 됨됨이와 상치되는 외관과 언어를 거부한다. 뫼르소가 유죄선고를 받은 것은 바로 언어의 코미디를 연출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언어의 코미디는 인간조건의 가장 현저한 형식이다. 뫼르소는 살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욕망도 느끼고 후회도 맛본다. 그러나 실제 자신의 됨됨이를 남들에게 표현한다는 것을 벌써 실제의 자신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조건이다.
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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